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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심이 바뀌다. 중국, 유럽, 미국

처음 유럽은 지금처럼 힘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과 교류를 원한 나라는 유럽국가, 즉 서양국가였으며 반대로 무역을 원치 않았던 나라는 중국이다. 그 이유로는 중국의 내수시장의 활성화와 많은 자본의 보유로 알 수 있다. 중국이 힘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에 중국은 해금정책을 중심으로 한 무역시작 단계였다. 항구를 1~3개만 개항한 채 서양에서 인기있는 차, 도자기 등 한정적인 물품만 수출하였다. 서양은 중국이 차를 수출하는 것 그 이상으로 수요가 강했으며, 막대한 은이 중국으로 계속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인들은 빠른 속도로 아편을 중독되기 시작했으며, 중국이 더 많이 수출하지만 은의 유입은 서양으로 쏠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편전쟁의 시작이다. 아편전쟁의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으며, 이를 계기로 영국-중국의 난징조약이 체결되었다. 난징조약은 중국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며 이로 인해 5개의 항구를 개항하기 시작하였다.

 서양은 동남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로 풍부한 자원과 식민지 노동력으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그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서양은 중국의 자기, 스파이시, 향신료를 찾기 시작하였으며, 시장확보를 위해 식민지를 필요로 하였다. 식민지의 노동력과 시장확보, 원자료를 모조리 끌어다모아 서양의 기술로 생산 후 다시 재수출하여 막대한 이익과 부를 창출하였다. 이는 즉 식민지무역, 노예무역이라고 불리며 넓은 토지로 각종 농수산물, 아편을 재배하기도 하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주도권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럽토지가 쑥대밭이 되고 막대한 자금과 해외투자금이 상실되었다.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유럽에 생필품과 군수물품을 판매하던 미국은 세계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미국은 전쟁전부터 인구증가율이 유럽을 앞질렀으며, 식민지 국가들은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과학적 노동자의 비율은 미국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미국이 가진 정보도 유럽을 앞질렀다.

 

미국은 유럽에게 긴급자금과 재건을 위한 마샬플랜을 실행하였다. 이러한 도움과 처칠의 프랑스, 독일 중심의 유럽합중국을 언급하면서 다시한번 유럽의 부흥이 시작되었다.